코펜하겐
자연보다 도시에 집중된 투어로 넘어가는 북유럽 6일차. 짧지만 강렬한 이틀간의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도시였다.
크루즈가 느긋하게 정박한 항구는 바로 도심 옆이었다. 우선 일정에 따라 시내를 벗어났다. 기차역을 끼고 4, 5층 높이의 집들이 정갈하게 배치되어 있다. 외곽으로 빠져나오니 아파트 같은 건물이 점점 사라지고, 오렌지빛 지붕이 길게 내려앉는 독채로 바뀐다. 그리고 순식간에 들판이 펼쳐지는데 빼곡히 자리 잡은 나무에 감탄도 잠시, 모두 인공림이라고 한다. 원래는 다 황무지였다고..!(사실 그게 더 놀랍긴함)
프레데릭스보르 성에 방문했다. 대관식 등 덴마크 왕실 주요 행사가 열리던 곳이었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르네상스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가장 큰 성이라고 한다.
약간 흐리게 시작했지만, 비가 지나가고 나면 날씨가 극적으로 맑아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호수를 둥그렇게 감싸는 나무를 뒤로 성이 보였다. 이때는 비가 올 듯 말 듯해서 색감이 더 진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정원으로 진입했는데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 양식과는 또 다른 멋이 있다. 북유럽의 바로크는 정해진 양식에 따라 잘 다듬어져 있고, 그것이 과하지 않다.
물길이 내려와 낮은 미로를 양옆으로 끼고 흐르는 수로와 정원의 모든 순간이 해를 받아 빛이 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코펜하겐 시내에 진입했다.
오슬로와는 또 다르게 조금 더 복작하고, 건물 고도가 전체적으로 낮은 느낌. 오렌지, 레드, 브라운 3개의 색이 뒤섞인 벽돌과 첨탑이 박힌 지붕이 예쁘다. 도시 전반적으로 주황색 지붕이 많은 편인데 이 오렌지 색이 도시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잡아주는 느낌이다.
점심 식사 후 짧게 Strøget 거리까지 걸어갔다.
적당한 채도를 가진 차분한 톤의 건물들은 수도답게 장식적이면서도 북유럽답게 심플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절제된 양식을 하고 있다.
깨끗한 백색의 아치형 천장 밑으로, 샹들리에를 단순화한 것 같은 원으로 둘러쳐진 흰 조명이 내려왔다. 현대적인 조명이 결코 오래된 교회를 헤치지 않는다.
다음으로 덴마크 하면 떠오르는 그 모습을 한 니하운에 도착했다.
유명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더니 온갖 곳에서 사진이나 그림, 일러스트 등등으로 접했던 그것이 내 눈앞에 펼쳐지니 이렇더라.
모든 건물이 색감으로 니하운의 아이덴티티를 새기는 와중에, 혼자 조금 다른 방법으로 화려-하다 싶은 건물은 프랑스 대사관이였다ㅋㅋㅋㅋ 이래서 여행 내내 서유럽(특히 프랑스)과 북유럽을 비교하는게 재밌었다.
물결이 빛을 받아 배 위로 반영되는 모습과 오일 페인팅처럼 뭉쳐진 구름이 인상적이었다. 코펜하겐의 이 광경이 백날 천날 있는 게 아니고, 날씨가 좋다 못해 태양 밑으로 타들어 가는:) 대가를 치러 얻어낸 어떤 날일 테니까.
거기다 타이밍 이슈로..30분을 넘게 기다려 유람선을 탔다. 해가 너무너무너무 뜨거워서, 사진 찍기 불편해 안 쓰던 모자를 뒤집어쓰고 미치기 딱 좋은 볕이다 싶을 때 승선했다:)
이 니하운을 관통하는 운하에는 유람선뿐만 아니라 작은 개인 요트가 굉장히 많았는데, 대부분이 그 위에 테이블을 두고 샴페인이나 맥주를 즐기고 있었다.
배에서나 다리 위에서나 유람선에 탄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드는 건 국룰인가보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할 수 있다ㅋㅋㅋ 가족 단위도 있고 친구들끼리 이렇게 나오면 정말 좋을 것 같더라. 정박된 선박은 카페나 레스토랑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개인 오피스로, 누군가는 취미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쩐지 낭만적이었다.
그 와중에 (배에 독일 국기를 걸고 있던 것으로 보아)독일놈들이 손을 흔들다 말고 냅다 물총을 쏘는 바람에(가만안둬) 카메라와 가방이 약간 젖었다ㅎ
운하를 빠져나오면, 강처럼 보이지만 코펜하겐 중심부를 관통하는 기다란 바닷길이 나온다.
카약을 타는 커플도 있었는데 그게 또 너무 귀여웠다.
배가 지나가는 길에 올려다본 아파트는 니트앤클린 그 자체였다.
이제 진짜 강인지 바다인지 헷갈리는 중앙부를 지난다.
검은 대리석의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블랙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왕립 도서관 Det Kgl. Bibliotek와, 블록스(BLOX)라는 덴마크 건축 센터 건물이 엄청나게 팬시했다. 각기 다른 블랙 색상으로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게 놀랍고, 이 둘이 함께 있어 더 인상적이었다.
오페라 하우스의 조형미도 아주 대단했다. 유럽의 클래식한 오페라 하우스도 항상 눈이 돌아가게 예쁘지만, 이런 기하학적인 요소를 과시하는 듯한 건축물도 참 멋있는 것 같다.
세계적인 선박 회사인 머스크(MAERSK)사는 엄청난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그 본사가 심-플 그 잡채다. 화려한 뉴욕의 본사 어쩌고를 많이 본 탓에 어색할 지경이었다ㅋㅋㅋ
북유럽 여행을 시작하고 신기하게도 백조를 많이 본 것 같은 느낌.
재밌는 디자인을 한 맨션이 중간중간 눈에 띄었다. 물을 끼고 있는 이런 것들은 대부분 비싼 아파트라고 한다:) 날이 너무 좋으니 유럽인들답게 뛰쳐나와서 햇살을 즐긴다. 아니 그리고 얘네 3,4시면 다 퇴근이라고 한다.
물에서 했던 그간의 투어 중에서도 아주 즐거웠고, 날씨가 좋다면 특히 추천한다.
투어가 끝나고 출발했던 곳에서 하선했다. 니하운의 형형색색의 건물들 반대편은 이렇게 얌전한 색을 가지고 있다.
배로 다닐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는 것을 감안해도, 코펜하겐의 중심지에 많은 것들이 몰려있어 둘러볼 수 있는 곳이 정말 많았다. 걸어서 투어 하기에 나쁘지 않다더니, 이 정도면 2,3일 정도 진득하게 붙어 걸어 다니면서 사진 찍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덴마크 왕실의 겨울 궁전이라는 아말리엔보르 왕궁에 잠시 들렀다. 원형 광장에 프레드릭 5세 동상을 기준으로 여러 개의 궁전이 배치되어 있다.
파란색 바지가 포인트인 근위병도 볼 수 있었는데, 정오가 되면 영국처럼 교대식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에서 별것 없는 관광지로 유명한 인어공주 동상이다. 그렇게 볼 것도 없다 하면서도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소 크기의 최대 관광지인 것.
그녀의 조물주인 한스 안데르센은 아동 문학의 기틀을 다졌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그는 아이를 위한 작품을 쓴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는 후문이 있다(실제로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도 하고..재밌는 사람이다). 실제로 인어공주뿐만 아니라 그의 원작을 살펴보면 아이들에게 읽어주기엔 비극적이거나 부적절한 작품이 상당히 많은 편.
이 썰렁한 관광지에 도착하니 막상 나는 생각보다 그 처연한 느낌이 잘 살아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름 비극 속 여주인공인데 막 대단하게 만들어 놓는 것도 좀 웃기지 않나.
그리고 인어 공주 동상 근처에 게피온 분수대가 있는데, 그 옆으로 세워진 교회가 멋있었다.
6일차 리뷰 끝.
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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