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롬-보링포센
노르웨이 시골 라이프 4일차. 여전히 날씨는 좋다(덥다는 뜻). 약간 우중충하고 흐릿한 북유럽의 보통 날은 이번 여행과 연이 없다고 볼 수 있겠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이드님은 아직 방심할 수 없다며 웃으셨지만, 일정의 반 정도가 지날 쯤에는 날씨 요정과 함께하는 우리 팀의 운을 인정하셨다:)
오늘은 플롬이라는, 산악 열차로 유명한 지역에서 시작한다. 나름 오슬로 근교 여행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미디어에서도 여러 번 소개가 되었다고 한다. 노르웨이를 오슬로 위주로 여행하고 저 북쪽 시골을 여유롭게 돌아다닐 시간이 없다면, 그래도 여기까지는! 와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대-충 깔짝거리면서 산 중턱쯤을 둘러보는 그런 거 아니고 정말 추천하고 싶다.
우리는 플롬역에서 출발해서 뮈르달(미르달, Myrdal)이라는 정상까지 갔다가 다시 플롬으로 돌아오는 왕복 노선을 이용했다. 이동수단이라기보단 관광수단에 가깝기 때문에 기차의 속력은 빠르지 않다. 편도로 1시간씩 해서 왕복으로 하면 2시간 정도 걸리는 코스인데, 이 시간이 굉장히 짧게 느껴졌다. 체감 시간은 1시간도 안 되는 듯했다.
뮈르달까지 갔다가 기차 머리를 돌려서 내려오는게 아니라 그대로 내려오기 때문에, 돌아갈 때는 올 때 탔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타면 반대편 뷰도 챙길 수 있다. 일행들은 모두 그룹 투어로 묶여있기 때문에 주어진 칸 내에서 방향을 바꾸면 되었다.
또, 잘 보면 위쪽 창문을 열 수 있는데(모든 자리가 가능하진 않다고 들었음), 너무 빡빡해서 안 열리는 줄 알고; 카메라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 게 아쉬웠다. 그렇다는 건 뭐다? 플롬을 다시 올 이유가 생긴 것 뿐이다:)
플롬 열차는 산악 열차라는 닉값에 정말 충실한 편이다. 산을 끼고 펼쳐진 광활한 초원과 완만히 떨어지는 언덕, 저 밑으로 깎여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을 지나, 폭포의 길이 되는 물, 다홍색 지붕을 한 집들을 지나쳐 효수포센(Kjosfossen)에 도착했다.
오늘의 주요 콘텐츠가 폭포이기 때문에 부연하자면 fossen은 노르웨이어로 폭포라는 의미이다.
그러니 이곳은 효수 폭포인 것이다. 정상에 도착하기 직전에 이 정거장에서 약 5분 정도 열차가 멈추고, 원하는 사람은 내려서 이 폭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기차에서 완전히 내리기도 전에 날아다니는 물방울...예상치 못한 엄청난 물보라에 당장 카메라는 집어넣었다ㅋㅋㅋㅋㅋ 엄청난 유속으로 돌벽을 부술 것처럼 물이 쏟아지는데, 이제껏 산 아래서 그렇구나 했던 폭포의 그 정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사진에 가득한 증기는 안개가 아니라 물보라의 여파.
물보라 때문에 전망대 난간에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내가 뭘 찍는지 스크린은 어차피 안 보이고 감에 의존해야 한다. 물의 침식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당연히 잘 모르지만 약간 공포스러웠다ㅋㅋㅋ 사진보다도 차례로 내리는 사람들의 연이은 탄성과 차갑게 흩날리는 물방울의 촉감, 부옇게 시야를 어지럽히는 그 모습 자체를 담는 것으로 했다.
요 근래 눈이 많이 녹는 중이라 폭포에 물의 양이 굉장히 많은 편이라고 하더라. 오히려 완전히 여름이 되면 눈이 어지간히 녹아서 이렇게 정신이 나갈 것처럼 물보라가 일지는 않는다고 한다.
반환 지점인 뮈르달 역에 도착하니, 산 머리에 얹어진 눈이 한 발짝 앞에 있었다. 이 눈 때문에 사진으로는 착각하기 좋은데 오늘 날씨는 전혀 춥지 않고,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더웠다.
내려오는 길에도 올라갈 때와 마찬가지로 효수 폭포에 잠시 멈춘다. 이번에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요정을 볼 수 있다. 노르웨이에는 훌드라(Huldra) 요정의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 속 요정을 모티브로 한 짧은 공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요정 언니는 첫 열차 승객들과 함께 출근하기 때문에 뮈르달로 향하는 첫 번째 편도 코스에서는 볼 수 없고 플롬으로 내려갈 때만 볼 수 있었다.
효수 폭포 두 번째 방문에는 어째 물이 더 많이 튀어 올랐다. 옷이고 소지품이고 꽤 많이 젖었지만 눈 녹은 폭포에 물벼락 맞는 경험을 살면서 몇 번이나 해보겠는가. 어차피 카메라는 꺼내지도 못하는 거 그냥 물벼락 맞으면서 재밌었다ㅋㅋㅋ 가이드님이 전망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물을 가장 많이 맞을 수 있다고 꿀팁(?)을 주셨다.
2시간의 여정이 끝나고 플롬 역에 도착하니 사람이 꽤나 많았다. 가급적 첫 열차를 타는 것이 좋은게, 확실히 기차 내부도 역도 사람이 덜 붐빈다.
이제 플롬을 떠나, 이동 중에 쌍둥이 폭포라 불리는 트빈다포센(Tvindefossen)에 잠시 들렀다.
폭포의 근원지가 퍼져 있는 모양으로, 수많은 계단을 만들며 지그재그로 내려오는 물의 모양이 꽤 볼만했다. 사진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은데 규모가 상당히 크다.
그다음 목적지는 보링포센(Vøringsfossen)이라는 또 다른 폭포이다.
패키지로 여행할 때는 방문하는 관광지를 (괜히 사진으로 첫 느낌을 망칠까봐) 자세히 찾아보지 않는 편이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약간 놀이공원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전망대 초입을 걸었다. 그런데 뭔가 암석의 퇴적층 같은 것들이 가팔라지고, 뭔가 자연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 같더라니..ㅎ 선진국의 설비를 (대부분은..) 믿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리란 걸 알지만 점점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느낌표가 커졌다ㅋㅋㅋ
세 줄기의 폭포가 까마득히 저 아래에서 하나로 합쳐지는데, 규모가 너무 커서 폭포에 다가설수록 이 광경을 한눈에 담기 어려웠다. 그 정도로 이 노르웨이 놈들이 말도 안 되는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것.
단순히 높은 건물에서 밑을 내려다보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높이가 제공하는 위치 에너지와 자연의 콜라보에 사람 따위 그냥 죽겠네?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그 장엄한 낙폭에, 설치된 난간이 촘촘해서 폰이고 카메라고 떨어질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발끝이 멀어지는 것 같은 아찔한 느낌에 맥박이 빠르게 뛰는데, 그렇다고 눈을 완전히 뗄 수도 없이 계속 쳐다보게 만드는 양가적인 충동이 오락가락하면서 내가 미쳤나 싶었다ㅋㅋㅋㅋㅋ
내가 살면서 봐온 폭포들은 얌전하고 정적인 편이였다고 인정할 수밖에.
전망대 건너편으로 계단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있고, 저기까지 완주하는 것이 이 코스의 완성인 듯했다.
멀리 내다보면 그저 아름다운 노르웨이 자연 풍경.
그리고 자작나무로 만든 벤치가 참 예뻤다. 미세 먼지가 없어서 흰 나무로 벤치를 만들어도 때 탈 일 따위 없구나 싶은 이 마음 너무 한국인 마인드ㅋㅋㅋ
호텔로 가는 길이 무려 툰드라...지형이었다.(대충 고지대라는 뜻)
영구 동토 특성상 나무가 없고 돌과 이끼만 있는데, 중간중간 마치 눈이 두껍게 쌓였다 한 겹씩 벗겨지는 중인 것처럼 퇴적층의 단면이 보였다. 또 눈으로 덮인 틈에 빛이 반사되어 푸른 빛을 띠는 동굴 같은 것도 있었다. 예전에 남극 탐험 관련 책에서나 봤던 그런 모양이 신기해서 버스 차창 너머로 눈알이 쉴 새 없이 굴러다녔다.
사진은 얼어버린 호수에 잠깐 들린 것인데, 그 나름의 감성이 멋지더라. 완전히 눈으로 덮인 것보다 풀도 있고, 눈도 있고, 돌도 보이는 이런 느낌이 사진으로썬 더 극적이긴 하다.
일행분들 중에 그 밑으로 어느새 내려가 사진을 찍는 분들이 있었는데 저 넘치는 추진력이 부러웠달까.
4일차 리뷰 끝.
B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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